• 두산 웹진 2013년 12월호_595권
  • 책으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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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세상 24회_글:권재현 기자(동아일보 문화부 '책의 향기' 팀장)

 

행간에서 느끼는 '야구의 재미' _공놀이의 기원부터 야구의 문화·철학·역사 다룬 책들

사실 지난 호에 쓰고 싶던 주제였다. 그런데 마감일까지 필자도 열렬히 응원하는 두산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통에 이번 호로 미뤘다. "야구 시즌이 끝났는데 무슨 야구 책이냐"고 책망하실 분도 계실 거다. 하지만 솔직히 야구 시즌 중엔 야구를 봐야지 한가하게 책을 볼 시간이 있겠는가. '미라클 두산'의 활약이 빛났던 올해는 유독 야구 관련 책이 많이 쏟아진 해이기도 하다.
 

인류학 박사가 탐구한 공놀이의 기원

책_더 볼 미국 역사학자 존 폭스가 지은 『더 볼』(황소자리)은 지구상 여러 공놀이의 발상지를 찾아다니며 쓴 책이다. 이 책의 서두는 야구에서 시작한다. 저자와 캐치볼을 즐기던 일곱 살 아들의 질문인 "아빠, 우리는 왜 공놀이를 하는 걸까요?"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에서 고대 마야문명 연구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아들의 이 단순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온갖 공놀이의 기원을 찾아 4년을 떠돈다. 축구와 골프는 그 발상지인 영국 스코틀랜드, 테니스는 중세 프랑스 수도원, 농구는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 저자가 발견한 것은 야구만큼 기원에 대한 관심과 강박이 많은 스포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1839년 남북전쟁 영웅 애브너 더블데이가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최초로 야구 경기 방식을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더블데이가 구슬치기 하는 아이들에게 다이아몬드 모양의 필드를 그리고 자신이 개발한 경기 규칙을 가르친 것이 야구의 시작이란 것이다. 영국의 크리켓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잠재우려고 100주년이 되는 1939년에는 야구 '명예의 전당'을 설립하고 기념우표까지 발매했다.
1301년 프랑스 문헌 '기스텔레스 시간 달력'에 수록된 공과 방망이를 사용한 중세 경기 하지만 미국 역사학자 중에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미국야구연구회의 아마추어 역사가들이 찾은, 방망이와 공을 사용한 1800년 이전의 경기 사례만 300건이 넘는다. 17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폴란드 노동자들이 즐겼던 '필카 팔란토와', 14세기 초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양치기들이 즐겼던 '오이나', 중동 베르베르 원주민들이 즐긴 '타 쿠르트 옴 엘 마하그(순례자 어머니의 공)', 5세기부터 시작됐다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롱볼(longball)' 등 둥근 공을 방망이로 때리는 놀이 자체는 원시시대부터 수없이 많았다.
저자가 야구의 직접적 기원으로 꼽은 것은 1450년경 영국 소년·소녀들의 놀이였던 스툴볼(stool-ball)이다. 타자들이 공에 맞아 아웃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빙 둘러놓은 나무 걸상들을 돌아 달리는 경기다. 여기서 야구의 사촌 형 격인 크리켓이 16세기경 분화됐고, 18세기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야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야구의 기원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한 것은 과거 식민 모국이었던 영국의 국기와 다름없는 크리켓과 차별화돼야 한다는 콤플렉스 때문이다. 저자는 크리켓 역시 지금의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역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다며 기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또 저자는 승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야구 자체를 즐기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의 놀이에서 출발한 야구는 1858년 '남자다운 경기'를 강조하면서 경기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승패에 집착하는 경기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소설·논픽션으로 본 야구의 매력

책_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의 소설 『야구란 무엇인가』(문학동네)는 제목과 달리 '야구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야구의 본질이 승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에 있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은 9회까지 진행되는 야구 경기처럼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또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했던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의 전신)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당시 타이거즈가 왜 그렇게 강팀이었을까? 저자는 타이거즈 경기에서 지는 경기는 물론, 이기는 경기에서도 막판에 '목포의 눈물'이 꼭 터져 나왔던 이유, 곧 1980년 광주의 한(恨)에 있다는 것을 주목해 이 소설을 썼다.
소설 속 주인공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내려온 '염소'의 손에 남동생을 잃은 인물이다.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는 타이거즈 경기 중계로 한을 달래다 결국 화병으로 세상을 떴고, 주인공의 아내는 동생을 닮은 아들 진구를 낳아놓고 가출했다. 주인공은 이 모든 고통의 원흉인 염소를 제거할 계획으로 집을 나선다. 염소를 찌를 칼과 복수가 끝나면 자신의 목숨을 끊을 때 쓸 청산가리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주인공 부자(父子)는 야구의 다이아몬드 필드를 돌듯 광주(홈)를 출발해 전주(1루)와 군산(2루)을 거쳐 마침내 서울(3루)에서 염소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연 그는 복수의 득점을 올리고 인생의 역전에 성공할까? 애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 3루까지 온 이 부자의 다음 행선지는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진작부터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야구란 결국 '무사히, 살아서 집(홈)에 돌아가는' 것이다.
책_야구예찬 야구광으로 유명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쓴 『야구예찬』(휴먼큐브) 역시 '끝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인생의 축소판'으로서 야구의 묘미를 소개하고 있다. 50여 년 야구 사랑으로 풀어낸 그의 야구 철학은 이렇다. "야구는 시즌 중 100경기를 훨씬 넘게 치르기 때문에 승리와 패배는 항상 존재하고, 선수들 역시 추락과 반등을 거듭하며 한 해를 버텨낸다. 오늘 이겼지만 바로 내일 패할 수 있고, 오늘 추락했어도 내일 솟아오를 수 있다. 그렇게 수많은 기쁨과 좌절, 행복과 고통 속에서 묵묵히 결승전까지 걸어가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두산베어스 팬임을 숨기지 않는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얼떨결에 뛴 동네 야구 시합에서 야구의 재미에 푹 빠졌다. 재능은 부족했는지 중학생 때 '주전자 선수(후보 선수)'로 뛰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야구를 그만뒀지만 꾸준히 야구를 즐기면서 엄청난 복을 누렸다. 자신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로 꼽았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시구를 했고, 좋아하는 야구를 책으로 썼으며, 일명 '야구 여신' 김민아 MBC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와 만나 대담까지 했으니 과장이 아니다.
책_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 논픽션 작가 김은식 씨가 쓴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한겨레출판)는 19세기 말 야구 문화가 최초로 전파된 공간인 인천을 무대로 야구인과 야구팬들의 이야기를 구성지게 풀어냈다. 한국 야구의 출발점은 영화 <YMCA 야구단>에서 소개된 '황성 YMCA 야구단'이 결성된 1905년이 맞다. 하지만 그에 앞서 1899년 인천 영어 학교의 일본인 학생이 "베이스볼이라는 서양식 공치기를 했다"는 기록을 남겼을 만큼 개항장이던 인천에서 야구 시합이 처음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1920년대 인천 야구단 '한용단'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전국적 지지를 받았다. 그런 야도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유독 프로야구 팀의 복이 없어 삼미 슈퍼스타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까지 5개 팀이 명멸하며 팬들에게 애환을 안겨줬던 인천의 남다른 야구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OB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두산베어스
※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강조한 것처럼 야구의 묘미는 승패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 올해 두산베어스가 역대 네 번째 우승을 못 했다고 낙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필자는 이렇게 위로를 전한다. "괜찮아! 이번 시즌, 아니 아마도 역대 시즌 통틀어 한 해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팀이 두산베어스라고. 정규 시즌 128경기에 포스트 시즌 16경기, 도합 144경기를 소화했다고. 그만큼 팬들에게 가장 많은 시합을 선물해줬으면 충분한 거 아냐?"